‘크리스마스 조이 헌금은 스틸맨 대학의 졸업생들에게 과거의 정의를 회복하고 미래를 이루어 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에밀리 엔더스 오돔
루이빌 – 사무실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던 라트렐 클리포드 우드는 사진 속에서 우연히 가족사의 중요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진에는 1901년 헌법이 작성될 당시 앨라배마 대법원을 주재했던 맥클렐런 대법원장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라고 스틸맨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2020학년도에 우등으로 졸업한 라트렐이 말했습니다. 스틸맨 대학은 미국장로교 소수 인종 커뮤니티를 육성하는 세 곳의 장로교 연계 학교/대학 중 하나이며, 유일한 흑인 대학(HBCU)입니다.
“많은 흑인들이 어쩔 수 없이 글을 읽는 법을 배울 수 없었던 상황과 그들이 비도덕적일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이 헌법은 흑인들의 투표권 박탈을 ‘정당화’하는 구절을 많이 담고 있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또 그녀는 “제 고조 할아버지의 어머니를 빼앗아간 집안이 맥클렐런 가문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알고 있던 이야기가 아니었죠.”
하지만 지금 그녀는 이를 알고 있습니다.
라트렐의 할아버지, 얼 R. 레인 중위는 터스키기 공군 조종사였으며, 그의 아버지인 리바이 레인은 앨라배마에서 태어나 오하이오 주 위클리프에서 민권 운동가로 활동했습니다.
어린 시절, 리바이의 가족은 남부 흑인 대이동의 첫 번째 물결이 일었을 때 KKK에 의해 주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이들은 오클라호마 주로 이사했습니다. 리바이의 아버지인 아이버슨 웨슬리는 이 주의 레드버드라는 도시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이 도시는 전 주민이 흑인으로 1921년에 발생했던 털사 학살 사건 때 일부가 불에 탔습니다. 이때 레인 가족의 사업체도 불에 탔습니다.
그녀는 오클라호마주의 많은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레인 대 윌슨 사건(1939)을 언급하며 “그 후에도 웨슬리 고조 할아버지가 투표권을 위해 오클라호마 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유권자 문해력 법을 뒤집은 두 건의 대법원 사건 중 하나에서 원고가 되었다는 사실이 정말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그의 어머니를 빼앗아 간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만들고 유지해 온 것과 동일한 법이었습니다. 이는 스코틀랜드 출신 개혁자이자 장로교의 창시자인 존 녹스의 직계 후손인 존 B. 녹스가 1901년 앨라배마 주 제헌의회 의장으로서 옹호하고 유지했던 법이기도 합니다.”
앨라배마 서부와 동부에 뿌리를 둔 3대에 걸친 민권 운동가이자 교사의 막내딸이자 손녀인 라트렐에게 역사, 그리고 회복적 정의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 언니인 다키시아는 항상 후성유전학적 트라우마의 여지가 있다면 후성유전학적 지혜의 여지도 있다고 말합니다”라고 라트렐은 말합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지 못해 매우 단절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알기 전부터 라트렐은 학자, 리더, 사회 정의 옹호자로서, 역사와 그 실제 적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스틸맨에 처음 왔을 때 비즈니스와 미술으로 시작했지만, 역사 수업을 몇 번 듣고 나니 이런 역사를 배울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또한, 학자금 대출의 부담과 그 영향을 겪은 어머니의 경험을 목격한 라트렐은 자신에게 투자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틸맨 대학은 그녀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라트렐과 같은 학생들에게 성공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미국장로교 ‘성탄의 기쁨’ 특별 헌금의 목적입니다. 이 헌금은 1930년대부터 장로교의 소중한 전통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이 연례 헌금은 연금국 의 재정 지원 프로그램 과 소수인종 공동체 인재를 육성하는 장로교 연계 학교와 대학에 고루 분배됩니다.
1876년에 설립된 스틸맨 대학은 처음에는 벨기에 점령지 콩고 지역에서 국왕 레오폴드 2세가 카사이 지역 주민을 학살한 사건을 폭로한 윌리엄 H. 셰퍼드 목사와 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목사를 양성하는 학교로 설립되었습니다. 실제로 1960년대에는 셰퍼드를 기리기 위해 대학 이름을 ‘셰퍼드 칼리지’로 바꾸자는 학생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HBCU는 한때 코크란 농장이었던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스틸맨 방식“를 따라 “지적 우수성 추구, 개인 역량의 발전, 공동선에 대한 헌신”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라트렐이 스틸맨에서 이룬 성취 중 하나는 대학의 지속 가능한 건강식 이니셔티브 태스크포스를 공동으로 설립한 것입니다. 이후 그녀는 커뮤니티 정원 프로젝트의 책임자이자 태스크포스 위원장을 맡아, 스틸맨의 사회 정의 및 커뮤니티 참여 담당 디렉터인 메이슨 보너와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현재 식품으로 나타나는 불평등과 싸우는 제 일은 사실 스틸맨에서 시작되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저는 1992년도 졸업생인 제임스 무하마드 형제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는 스틸맨에서 이니셔티브에 참여하는 것의 역사적 중요성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강조한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 식량을 재배하고 제공하는 능력에서 세대 간 지식이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가입니다. 이는 초창기에 이 대학 공동체를 만들어낸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창립 당시 백인 교수만을 고용한 이 기관을 세우기 위해서, 흑인 학생의 노동력을 동원한 것이 강제적이었는지 자발적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라트렐은 의회 흑인 코커스 재단을 통해 워싱턴 D.C.로 가서 앨라배마주 제7지구 의회 인턴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2023년에는 빈곤으로 소외된 앨라배마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 정책을 추진하는 주 전역의 구성원 주도 단체인 앨라배마 어라이즈의 기아 정책 옹호자로 활동하며, ‘스틸맨의 방식’을 세상에 전파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올봄 첫 주의회 회기 동안 라트렐은 다음 세대인 앨라배마 어린이들의 여름철 식량 불안정성을 줄이는 프로그램인 여름 EBT를 운영하기 위한 주정부 지원금 1,000만 달러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라트렐은 캠퍼스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열정과 이념의 등불이었습니다”라고 라트렐의 전 지도교수인 타샤 워싱턴(‘학생 유지 및 학생 성공’ 담당 학과장)은 말합니다. “라트렐은 본질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교육자의 자녀인 라트렐은 “교육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근로자의 권리, 형평성, 직장 내 웰빙을 증진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해와 함께 성숙해졌습니다.
심리학 조교수이자 라트렐의 첫 번째 현장실습 지도교수이자 멘토인 아스카리 호다리 박사는 이러한 돌봄의 모습에 대해서 확인해주었습니다.
라트렐을 지도하던 중 암 4기 진단을 받은 호다리는 “라트렐은 모든 일을 잘 해냈을 뿐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파악하고 솔선수범하여 실행에 옮겼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호다리는 “제가 교수실에 들어오면, 그녀는 ‘잘 먹고 마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구내식당에서 먹을 것을 가져다주곤 했어요”라고 회상했습니다. “그녀는 젊은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친절함과 관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호다리 교수, 워싱턴 학과장, 신시아 워릭 박사(스틸맨 대학 전 총장이자 최초 여성 총장)가 졸업 전과 졸업 후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기에, 라트렐은 대학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스틸맨은 사립 기관이고 주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기부금에 의존하는데, 때때로 백인 복음주의 인종주의가 약간 스며들 수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가부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기부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과 같은 이니셔티브가 이러한 기부를 촉진한다.
“저는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이 회복적 정의를 지원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라트렐은 말합니다. “부분적으로는 흑인 교수와 교직원이 경쟁력 있는 임금을 받고 학생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보장합니다. 현재 대학 입학 시 소수 인종에 대한 적극적 우대 조치가 번복되었습니다.또한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에 반대하는 법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치 환경 속에서 역사가 깊은 흑인을 위한 교육 기관에 더 많은 학생이 등록할 것입니다. 미래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이를 더 많이 키워낼 이 학교에 지원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아주 많습니다.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이는 바로 라트렐 같은 이들이다.
호다리 교수는 “라트렐에 대해 가장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점은 그녀가 훌륭한 미래 세대 청지기라는 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그녀는 뛰어난 페이스메이커입니다. 저는 정말로 그녀를 신뢰합니다. 몇 년에 한 번씩 우리에게 찾아오는 아주 특별한 학생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 학생들이 사람들이 특별 헌금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호다리 교수는 HBCU의 졸업생이자 교수진이기도 한 만큼, 그들의 유산을 이어가기 위한 기부와 환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다시 베풀 것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이것은 계속해서 이어질 선순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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